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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산행코스,정보)

아차산,용마산 일대 보루군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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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중학교에 벽에 그려진 가무도 벽화.
고구려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치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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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보루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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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그린공원 입구입니다.
2007년 봄에 정비되어 정자등을 설치하여
시민 휴식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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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시면 인도가 공사 중입니다.
2007년 10월경에 시작하여 현재 진행중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공사중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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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의 상징인 바보 온달 장군과 평강공주 동상입니다.

삼국사기 온달편을 보면 " 阿旦城 " 에서 온달장군이 죽었다는 애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 阿旦城 이 어디냐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주장을 내새우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온달산성과 온달동굴등 역사적 유적과 온달에 대한 곳곳에 남아 있는
단양이고,
두번째가 아단성(현재는 아차산성)이 있는 아차산입니다.
아차산에는 온달샘과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바위들이 있습니다.
어디가 정확한 사망지인지는 모르나,
온달 장군이 남진정책중 사망한 것으로 보아 둘다 온달장군의 전쟁터였음은 확실합니다.


---- 삼국사기 온달편 인용 ----
『三國史記 列傳 卷第四十五 - 溫達 (삼국사기 열전 권제45-온달 편) 』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鐘可笑, 中心則 {曉 /  /曄 } {然} . 蒙{家} 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汝常啼 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얼굴이 험악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며,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시정간을 왕래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곧잘 울었으므로 왕이 농담으로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야 되겠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녀가 울 때마다 이런 말을 하였다.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딸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딸을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공주가 대답하기를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오늘 무슨 까닭으로 전일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왕의 명령이 잘못되었으므로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화를 내어 말했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정말로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너 갈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



○於是, 公主以實{寶} 釧數十枚繫 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具{且} 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 , 以至於此乎? 惟我息, 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 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 ,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 ,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乃賣金釗{釧} ,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이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걸고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떠났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눈먼 노모를 보고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절을 하며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보잘 것이 없으니, 귀인이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보통이 아니고, 그대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으니, 필시 천하의 귀인인 듯합니다. 누구의 속임수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다 못하여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 속으로 간 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공주가 그 집을 나와 산 밑에 이르렀을 때,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가 그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니 온달이 불끈 화를 내며 말했다. "이는 어린 여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니 필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온달은 그만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공주는 혼자 돌아와 사립문 밖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모자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온달이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내 자식은 비루하여 귀인의 짝이 될 수 없고, 내 집은 몹시 가난하여 정말로 귀인이 거처할 수 없습니다." 공주가 대답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꿰맬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만일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꼭 부귀해야만 같이 살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공주가 금팔찌를 팔아서 전지, 주택, 노비, 우마, 기물 등을 사들이니 살림 용품이 모두 구비되었다.

○初, 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至其日, 王出獵, 群臣及五部兵士皆從. 於是, <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 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來, 問姓名, 驚且異之.

처음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부디 시장의 말을 사지 말고, 나라에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여 백성에게 파는 말을 선택하되, 병들고 수척한 말을 골라 사오세요." 라고 하니 온달이 그대로 말을 사왔다. 공주는 부지런히 말을 길렀다. 말은 날로 살찌고 건장해졌다. 고구려에서는 언제나 봄 3월 3일을 기하여 낙랑 언덕에 모여서 사냥하여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여러 신하와 5부의 군사들이 모두 수행하였다. 이 때 온달도 자기가 기르던 말을 타고 수행하였는데, 그는 항상 앞장 서서 달리고, 또한 포획한 짐승도 많아서 다른 사람이 그를 따를 수 없었다. 왕이 불러서 성명을 듣고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時, <後周><武帝>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肄山}> 之野.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擊大克.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策{第} 一.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由此, 寵榮尤渥, 威權日盛. 及<陽岡王{ 陽王}> 卽位, <溫達>奏曰: "惟<新羅>, 割我<漢北>之地, 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王許焉. 臨行誓曰: "<鷄立峴>·<竹嶺>已西, 不歸於我, 則不返也." 遂行, 與<羅>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 } 而死. 欲葬, 柩不肯動, 公主來撫棺曰: "死生決矣, 於乎, 歸矣." 遂擧而 . 大王聞之悲慟.

이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을 공격하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 들에서 맞아 싸웠다. 그 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공을 논의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작위를 주어 대형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그에 대한 왕의 은총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위풍과 권세가 날로 성하여졌다. 양강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기를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북 지역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만들었으므로, 그곳의 백성들이 통탄하며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고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단번에 우리 땅을 도로 찾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가 길을 떠날 때 맹세하였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는 드디어 진격하여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그를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사생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라 말하고, 마침내 영구를 들어 하관하였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였다.
---- 삼국사기 온달편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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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생태공원 안내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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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종합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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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봉 1보루 2보루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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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홍련봉 1보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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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봉에서 봐라본 수락지맥 능선이자,
서울시와 구리의 경계선인 능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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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홍련봉 2보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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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안내도가 설치된 곳 뒷편을 보시면 홍련봉으로 올라갈수 있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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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으로 진입하기 좋은 등산로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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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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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모습이 보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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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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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의 유래에 대한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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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임을 알려주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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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사랑을 뜻하는 연리근입니다.
강동6산길에 보면 연리목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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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님 사진 찍으시는 중 ^---^
사진만큼 마음도 이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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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의 또다른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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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광장 쪽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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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팔각정입니다.
지금은 공사중인데,
예산문제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공간이고,
멋진 야경을 시민들에게 선사해주는 쉼터이므로 하루 빨리 복구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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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공원입니다.
이곳은 아차산의 유래에 대한 설화가 있는 곳입니다.
--- 인용 ---
아차산이라는 이름에 얽힌 전설 중에는 점쟁이의 전설이라는 것이 있다. 조선 명종 때 홍계남이라는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점술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문이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왕은 그를 시험하기 위하여 항아리 속에 쥐를 두 마리 넣어 뚜껑을 덮어 놓고 그에게 물었다. 쥐가 몇 마리 들어있는지 알아맞히면 큰 상을 내릴 것이지만 만약에 맞히지 못하면 왕을 속인 죄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하였다.

신중하게 점을 친 홍계남은 쥐가 일곱 마리가 들어 있노라고 말하였다. 왕은 대노하여 당장에 참형에 처하라고 명하였다. 홍계남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홍계남을 형장으로 보낸 후에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다섯 마리가 들어 있었다. 사실은 용케 맞힌 셈이었다.

왕은 ‘아차’ 실수 하였구나, 하고 급히 형장으로 사람을 보내 형 집행을 정지시키려 하였지만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형이 집행되어 홍계남은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형집행 장소의 뒷산인 이 산을 아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차산은 또 남쪽을 향하여 불쑥 솟은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아끼산, 에께산, 엑기산, 악계산이라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었던 산이라고 전한다.

---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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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설치된 소나무 모양의 가로등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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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해맞이공원 조망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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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보루는 지금 한참 공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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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이지만 짤려나간 나무를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뭐든지 자연 그대로 좋은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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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1보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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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고구려 유적 정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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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5보루의 모습입니다.
역시 정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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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긴고랑 건너편에 용마산 1,2 보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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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3보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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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
일명 아차산 헬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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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긴고랑으로 내려가 점심을 매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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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약수터 표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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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고랑 양편으로 곳곳에 암벽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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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이 좀 있네요.
물이 생각보다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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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골지구에서 기원정사로 이동하여 오른쪽 능선을 따라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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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너무 익은듯 곳 떨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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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시간에 해밀님이 주신 책3권
감사합니다 잘 볼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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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정사 입니다.
동네주민이 왼쪽에 등산로가 있다는 말을 믿고 갔다.
용마산 1보루 찾기 못했습니다.
오른쪽에 등산로가 있는지 찾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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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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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이쁘게 어울려진 능선길입니다.
참 경치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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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딸기님,
오늘이 첫 산행이십니다.
조금은 긴 산행이었는데,
다리 아프시죠 ^^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즐거운 산행에서 다시 만나고 싶네요.
도전2030 회원님들 따뜨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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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너무 이뻐서 사진 찍으시느라 바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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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고랑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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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뒤에 보이는 높은 곳이 용마산 2보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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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2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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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좋은 용마산 2보루의 올라 간식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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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채석장 왼쪽 능선을 보면 돌탑이 보입니다.
그곳이 용마산 6보루입니다.
시간관계상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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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정상 일명 용마산 철탑입니다.
이곳이 용마산 3보루라는 애기가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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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정산에서 단체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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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아차산 칼바위능선이라고 이름 지은 곳입니다.
아차산 야간산행에서는 이곳으로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나 운동화로도 이동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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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몰이 참 멋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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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소망탑입니다.
참 정교하게 지은 탑이니 건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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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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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과 간단한 생맥주로 뒷풀이 ^^

까칠한홍정양(김홍정)&날아라딸기(최민경)&해밀(고금주)
모두 수고하셨구요.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즐거운 산행에서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