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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지리산 대원사

지리산 대원사 단풍


▲ 고목나무와 홍조 띤 단풍의 대비가 이채롭다.
ⓒ2005 조찬현
전남 보성 대원사 가는 5km 길가에는 벚나무가 서로 마주보고 발그레하니 홍조를 띠고 있다. 왼편의 주암댐 지류에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채 갈대가 갈증으로 숨죽이고 있다.

▲ 개울가의 단풍나무
ⓒ2005 조찬현
산자락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가면 갈수록 고즈넉함은 더하고 억새가 군데군데 무더기로 모여 갈바람에 속삭이며 흔들린다. 솔솔 부는 바람결에 한잎 두잎 떨어져 나뒹구는 나뭇잎, 끝없이 이어지는 벚나무 터널사이로 간간이 낙엽이 우수수 진다.

대원사 사찰의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며 섬세하다. 단풍은 드문드문 수줍은 듯 숲속에 숨어 있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 옆 고사목과 애기단풍이 어우러져 가을 느낌이 든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개울물소리가 산사의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한다.

▲ 발그레하게 점점 물들어가는 형형색색의 단풍잎
ⓒ2005 조찬현
천년고찰 대원사에는 일곱 연못이 있다. 아직껏 꽃을 피운 연꽃과 수생식물, 부레옥잠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약수 한 모금에 시름을 날려버리고 경내로 들어서자 산자락 곳곳에 단풍이 숨어있다.

▲ 깊은 산중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는 한 모금에도 정신마저 깨끗하게 한다.
ⓒ2005 조찬현
담장 옆에 핀 구절초에는 벌 나비들이 날아들어 잔치가 열렸다. 종각 아래 단풍나무에 매달린 팻말에 쓰인 '따라 해보기' 내용이 눈길을 붙잡는다.

▲ 나비와 벌들의 잔치가 열리고 있는 담장 아래 구절초가 산사의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2005 조찬현

-숨을 길게 들이쉬며 나는 도착했다
-숨을 내쉬며 이곳도 나의 집이다
-숨을 들이쉬며 걸음마다 평화!
-숨을 내쉬며 걸음마다 연꽃!


경내 숲속 곳곳의 나무에 매달린 아름다운 글귀와 명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나는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산다

가진 것 없지만
가지려는 마음도 없다
그래서 난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난
모든 이에게
자비심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은행나무에 걸린 독일의 거지성자 페터노이야르의 글이다.

대원사 사철나무에는 머리로 치는 왕 목탁이 걸려 있다. 일명 '연인목'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많은 사철나무라고 한다. 신도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고즈넉한 산사의 고요를 종각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흔들어 깨운다.

한 중생이 왕 목탁을 머리로 내받는다. 턱~! 둔탁한 목탁소리에 깜짝 놀란다. "아이쿠! 머리야~"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아픔 또한 깨달음이 아닐까.

▲ 사철나무에 걸린 머리로 치는 왕목탁 일명 "연인목"이라 불린다.
ⓒ2005 조찬현
단풍나무 숲 속에서 두 갈래 물줄기가 치솟는다. 활~ 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을 잡으려는 것일까. 119소방차가 경내에서 화재 진압을 위한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단풍이 든 연잎과 제철을 넘긴 가을에 핀 연꽃이 쓸쓸함을 더해준다.

법당의 풍경소리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자 수십 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감나무에는 빨갛게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렸다. 개울가의 꽃이 진 해당화는 바람에 흔들리고 간간이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눈에 밟힌다.

▲ 부끄러워 부끄러워 빨갛게 물들었나
ⓒ2005 조찬현
바르도의 길 대숲에 들어서다. 바르도는 '틈새'라는 티베트 말로 죽음에서 환생까지의 49일간의 중간계를 뜻한다. 대숲에서는 뱁새가 쉼 없이 재잘재잘 독경을 한다. 산중턱의 대숲에도 예외 없이 기도문과 생명의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 까치밥일까. 까치에게 보시하기 위해 일부러 놔둔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2005 조찬현
'묵언'의 정자는 너와로 지붕을 이었다. 정자 아래 너럭바위 위로 늘어진 단풍나무가 멋스럽다. 성모각에 이르는 오솔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 아래서 낙엽이 서걱서걱 아우성이다. 갑작스레 푸드득 멧비둘기가 날아간다. 깜짝 놀랐다. 나만 놀란 게 아니라 멧비둘기 또한 많이 놀랐을 게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 머리에 빨간모자를 눌러 쓴 동자승의 모습
ⓒ2005 조찬현
대자연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는 어머니 산신을 모시는 성모각인 산신각에는 보통 호랑이를 거느린 할아버지 상을 모시지만 이곳에는 자비와 위엄을 갖춘 성모님이 사슴을 거느리고 있다. 산중에서 장끼 한 마리가 울자 이산 저산에서 함께 우는 꿩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친다.

오솔길에는 나무뿌리가 인간사처럼 얼기설기 뒤엉킨 채 드러나 있고, 구부러진 나무와 산죽이 어우러져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대원사 산사의 가을 숲 속에는 단풍나무가 수줍은 듯 여기저기 숨어있다.

▲ 숨어 있는 대원사의 단풍을 찾는 재미 또한 즐겁다.
ⓒ2005 조찬현
수줍은 듯 숨어든 대원사 단풍 찾기
가진 것 없지만 가지려는 마음마저 비우게 하는 산사의 가을
텍스트만보기    조찬현(choch1104) 기자   
▲ 고목나무와 홍조 띤 단풍의 대비가 이채롭다.
ⓒ2005 조찬현
전남 보성 대원사 가는 5km 길가에는 벚나무가 서로 마주보고 발그레하니 홍조를 띠고 있다. 왼편의 주암댐 지류에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채 갈대가 갈증으로 숨죽이고 있다.

▲ 개울가의 단풍나무
ⓒ2005 조찬현
산자락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가면 갈수록 고즈넉함은 더하고 억새가 군데군데 무더기로 모여 갈바람에 속삭이며 흔들린다. 솔솔 부는 바람결에 한잎 두잎 떨어져 나뒹구는 나뭇잎, 끝없이 이어지는 벚나무 터널사이로 간간이 낙엽이 우수수 진다.

대원사 사찰의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며 섬세하다. 단풍은 드문드문 수줍은 듯 숲속에 숨어 있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 옆 고사목과 애기단풍이 어우러져 가을 느낌이 든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개울물소리가 산사의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한다.

▲ 발그레하게 점점 물들어가는 형형색색의 단풍잎
ⓒ2005 조찬현
천년고찰 대원사에는 일곱 연못이 있다. 아직껏 꽃을 피운 연꽃과 수생식물, 부레옥잠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약수 한 모금에 시름을 날려버리고 경내로 들어서자 산자락 곳곳에 단풍이 숨어있다.

▲ 깊은 산중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는 한 모금에도 정신마저 깨끗하게 한다.
ⓒ2005 조찬현
담장 옆에 핀 구절초에는 벌 나비들이 날아들어 잔치가 열렸다. 종각 아래 단풍나무에 매달린 팻말에 쓰인 '따라 해보기' 내용이 눈길을 붙잡는다.

▲ 나비와 벌들의 잔치가 열리고 있는 담장 아래 구절초가 산사의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2005 조찬현

-숨을 길게 들이쉬며 나는 도착했다
-숨을 내쉬며 이곳도 나의 집이다
-숨을 들이쉬며 걸음마다 평화!
-숨을 내쉬며 걸음마다 연꽃!


경내 숲속 곳곳의 나무에 매달린 아름다운 글귀와 명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나는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산다

가진 것 없지만
가지려는 마음도 없다
그래서 난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난
모든 이에게
자비심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은행나무에 걸린 독일의 거지성자 페터노이야르의 글이다.

대원사 사철나무에는 머리로 치는 왕 목탁이 걸려 있다. 일명 '연인목'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많은 사철나무라고 한다. 신도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고즈넉한 산사의 고요를 종각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흔들어 깨운다.

한 중생이 왕 목탁을 머리로 내받는다. 턱~! 둔탁한 목탁소리에 깜짝 놀란다. "아이쿠! 머리야~"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아픔 또한 깨달음이 아닐까.

▲ 사철나무에 걸린 머리로 치는 왕목탁 일명 "연인목"이라 불린다.
ⓒ2005 조찬현
단풍나무 숲 속에서 두 갈래 물줄기가 치솟는다. 활~ 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을 잡으려는 것일까. 119소방차가 경내에서 화재 진압을 위한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단풍이 든 연잎과 제철을 넘긴 가을에 핀 연꽃이 쓸쓸함을 더해준다.

법당의 풍경소리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자 수십 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감나무에는 빨갛게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렸다. 개울가의 꽃이 진 해당화는 바람에 흔들리고 간간이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눈에 밟힌다.

▲ 부끄러워 부끄러워 빨갛게 물들었나
ⓒ2005 조찬현
바르도의 길 대숲에 들어서다. 바르도는 '틈새'라는 티베트 말로 죽음에서 환생까지의 49일간의 중간계를 뜻한다. 대숲에서는 뱁새가 쉼 없이 재잘재잘 독경을 한다. 산중턱의 대숲에도 예외 없이 기도문과 생명의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 까치밥일까. 까치에게 보시하기 위해 일부러 놔둔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2005 조찬현
'묵언'의 정자는 너와로 지붕을 이었다. 정자 아래 너럭바위 위로 늘어진 단풍나무가 멋스럽다. 성모각에 이르는 오솔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 아래서 낙엽이 서걱서걱 아우성이다. 갑작스레 푸드득 멧비둘기가 날아간다. 깜짝 놀랐다. 나만 놀란 게 아니라 멧비둘기 또한 많이 놀랐을 게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 머리에 빨간모자를 눌러 쓴 동자승의 모습
ⓒ2005 조찬현
대자연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는 어머니 산신을 모시는 성모각인 산신각에는 보통 호랑이를 거느린 할아버지 상을 모시지만 이곳에는 자비와 위엄을 갖춘 성모님이 사슴을 거느리고 있다. 산중에서 장끼 한 마리가 울자 이산 저산에서 함께 우는 꿩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친다.

오솔길에는 나무뿌리가 인간사처럼 얼기설기 뒤엉킨 채 드러나 있고, 구부러진 나무와 산죽이 어우러져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대원사 산사의 가을 숲 속에는 단풍나무가 수줍은 듯 여기저기 숨어있다.

▲ 숨어 있는 대원사의 단풍을 찾는 재미 또한 즐겁다.
ⓒ2005 조찬현